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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명소

대덕구의 자랑인 명소를 소개합니다.

소대헌·호연재

소대헌·호연재_01
조선 여류 시인의 희노애락이 녹슨 곳,
소대헌·호연재 고택
이 고택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 분가하여 후손들이 지내온 집이다.

남달리 이곳이 소대헌·호연재 고택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그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 ~ 1722)가 지냈던 탓인데,
호연재 김씨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녀는 1681년 충청도 홍성에서 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동 김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문학적 가풍에서 자라났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금슬이 좋아 함께 시를 나누고 풍류를 즐기는 사이었다. 다복한 환경에서 자란 호연재는 타고난 재기를 더없이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19살에 결혼한 남편 송요화와의 금슬은 좋지 못했다. 송요화는 밖으로 겉돌고 호연재와 집안 살림을 방치했다.

밖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가솔들의 생계를 꾸리는 것은 호연재의 몫이었다. 집안에 노비가 많았으나 그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고 먹여 살려야하는 일이 컸다.
그녀가 남긴 한글 서찰에는 시아주버니에게 콩을 꿔달라고 적을 정도로 절박했던 내용이 남겨져 있다.

  • 소대헌·호연재_02
  • 호연당 위의 호연한 기상
    구름과 물, 사립문 호연함을 즐기네
    호연이 비록 즐거우나 곡식에서 나오는 법
    삼산군수에게 쌀을 빌리니 또한 호연한 일일세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그만일세
    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즐겁기만 해서 잠시 정을 잊었네

외로웠던 호연재의 삶을 위로해 준 것은 술과 담배였다. 사대부 부인이 술과 담배를 즐겼다는 게 새롭다.
명문가의 종부도 술을 마시며 근심 걱정을 잊는다는 것이 요즈음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들에 의해 작품들이 한데 엮여졌다. 아들 익흠과 외손자, 시댁조카들이 그녀의 문재를 이해하고 세상에 남겼다.

맹자의 ‘호연지기’에서 따온 자신의 호처럼 당당한 여인의 삶을 살고자 했던 호연재. 명문가 안에서 화초처럼 살다간 여인이 아닌, 생계를 위해 고분분투했어야했던 호연재의 치열한 삶이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대덕구에서는 호연재를 기리기 위해 매년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고택을 배경으로 전통의상 체험, 토크 콘서트, 마당극 등 다채로운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위 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 문 의 : 042-608-6574
  • 휴무일 : 없음
  • 입장료 : 없음

자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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